사과나무 한 그루

2010. 9. 2. 15:12한가족/(한)그루



여름의 마지막 비가 내려 어둑하고 낯익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너를 만났다.
너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있었고 어딘가 조금 달라 보이는 너를 한참이나 처다 보며 가슴 한 켠에 차오르는 감정들을 억누른 체 설렘만을 드러냈던 것 같다.

나는 익숙한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안정을 찾았지만 너는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것이 나에 대한 것이었는지 낯선 곳에 대한 것이었는지는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모르겠다.

마냥 불안해하는 네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세며 너를 달래고자 애를 쓰는 나를 알아준 것인지 너는 그제서야 나와 눈을 맞추고 조금은 긴장을 풀은 듯 잠을 청했다.

그렇게 며칠 후 너는 첫날보다 안정을 찾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어딘가는 불안해보였는데 그것은 순전히 나 때문 이었기에 더욱 미안했다.
너와 닮은 아이를 알고 있었다.
너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아이가 떠올랐고 그 아이에게 해주지 못 한 것, 그 아이 마음을 헤아리지 못 했다는 사실을, 그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들을, 그 허전함을 너를 통해 채우려고 했던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린 것 같다.
나에게는 조금이었을 그 시간들이 너에게는 길었을수도 있다.

하루는 너를 볼 때 마다 아파하는 내가 싫어서 네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를 보내려고 마음을 먹고 친구에게 사실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는 조용히 내 앞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커다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너의 눈망울이 슬퍼 보였던 것이 나의 착각이었을까?
나는 전화를 끊고서도 한참이나 울고 있었고 너는 조용히 앞에 앉아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너의 그런 모습에 나는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때의 너는 아주 작고 어렸지만 나보다 더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반년 정도 너를 통해서 그 아이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너를 통해 그 아이를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교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너를 볼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이 났고 ‘그 아이였다면..’이라고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너는 차마 내게 더 다가오지 못 하고 거리를 두고 내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밤, 잠에서 문뜩 깨어보니 너는 곁에 없었고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으며 너와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몇 시간동안 너를 찾으며 내가 부르는 소리에 네가 놀랄까봐 조용히 부르다 숨을 죽이고 걸음을 멈추고 너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곤두세운 체 제자리에 멍하게 서있기를 여러번, 너의 작은 흐느낌이 들려왔고 그렇게 찾은 너는 작은 몸을 웅크리고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떨고 있었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너도 나처럼 어둠 때문에 더 겁에 질렸던 걸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너를 안았을 때 작은 손에 힘을 잔뜩 주고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일까?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의 시간이 흘러 네가 순전히 나의 뜻만으로 몇 시간동안 낯선 곳에 혼자 있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그 날의 너는 몇 달 전의 밤처럼 어쩌면 그때보다 더 무척이나 불안한 모습으로 겁에 질려  내게 안겨 손을 놓지 못 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네가 몇 시간 후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보이는 사람이 나여야 한다고, 나였으면 좋겠다고, 나를 보고 조금은 불안이 가시기를 빌었다.

그 날 이후로 너는 조금씩 내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너의 날카로움에 아프기도 했지만 그것은 내가 너를 서운하게 한, 네가 나에게 하지 못했던 어리광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표현방법조차도 마냥 기쁘기만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네가 곤히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옆에 숨죽이고 누워 같은 꿈을 꾸기를 바란 것이...

너를 만나고, 너를 알아 간지 3년이 되어가는 지금
너와 나는 서로 익숙해졌고 표현방법도 어리광에도 익숙해져서 서로 외면하고 혼자 있게 내버려 두는 시간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음이 신기하고 내 곁에 있어주는 네가 마냥 고마울 뿐이다.

 

 

안녕, 우리 그루.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있자.

 


2010년 9월 2일
12일 후면 우리 함께 한지 3년째 되는 날이야.